2004년 5월 미켈롭울트라오픈 우승으로 이뤄진 박세리의 “세계골프 명예의 전당” 입회 포인트 확보는 한국 골프사에서도 기념비적인 사건 이었다.
전 세계 모든 골퍼들의 평생 소원이자 꿈을 한국 선수로서 유일하게 이룬 것 이었다.
남녀 골퍼를 합해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가입한 선수는 남자는 10여개국 80명, 여자 회원은 7개국 30여명등 110명이 조금 넘는다. 전세계 남녀 골퍼의 숫자가 얼마나 될까? 수백만명은 족히 될 것이다.
박세리가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 입회 포인트 확보 당시 일부에서는 아시아 최초라고 흥분하기도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 이 아닌 LPGA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명예의 전당이라는 표현이 더 옳다.
아시아 여자 골퍼 중에는 일본의 히구치 이사코가 “세계 곪프 명예의 전당”에 2003년 처음으로 가입해 있었다. 2005년에는 오카모토 아야코가 가입했고, 일본 남자 골퍼의 대명사인 점보 오자키는 2004년 남자 골퍼로선 아시아 최초로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정 되었다.
박세리는 LPGA 무대 활동경력 10년을 채워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2007년 11월 12일 정식으로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다.
명예의 전당 가입 포인트를 확보한 박세리는 “다음 목표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 달성” 이라며 자신에 찬 각오를 밝혔지만 이때부터 오히려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된다. 이후 출전하는 대회마다 30~50위권을 넘나들며 시즌을 마치게 된다.
LPGA 투어는 외국인 선수에게는 연간 15개 대회 이상을 치르지 않으면 이듬해 전 경기 출전권을 주지 않고 있는데 당시 박세리의 몸 상태는 15개 대회를 채울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결국 일찌감치 시즌을 접고 그해 10월 일찍 귀국해 칩거하며 주위의 처방대로 클럽을 손에서 완전히 놓고 산행을 다니며 마음 추스리기에 나섰다.
부활의 조짐이 나타난것은 5월 초 끝난 진클럽앤드리조트오픈 2년 만에 톱10안에 든 것이다.
명예의 전당 가입으로 얻은 기쁨과 2년여 동안의 긴 슬럼프에서 벗어난 기쁨중 어느 것이 더 값질까 ? 박세리가 대답할 질문이지만 명예의 전당은 박세리에게 적어도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준 상징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